존재의 명분 건축과 동양철학 회전하므로 쓰임이 생기는 것 인류가 만든 발명품 중에 최고는 무엇일까요?문자나 인쇄술도 그럴 것이고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도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발명품입니다.그런데 저희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바퀴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겠습니다.바퀴가 없었다면 회전하므로 쓰임이 생기는 모든 것, 예컨대 시계, 물레방아, 발전기, 굴러다니는 모든 것은 없었을 것 입니다. 고대인들은 통나무를 잘라 밑에 받쳐 굴림으로 무거운 물체를 옮겼습니다.이것이 바퀴의 시작인데, 둥근 디스크 형태의 바퀴를 축에 끼워 사용하기까지 약 2만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그런데 디스크 형상의 바퀴는 치명적인 약점이 2가지 있습니다.주로 돌이나 나무를 둥글게 깎아 그 중심에 구멍을 내어 바퀴 축에 끼워 사용했는데, 첫번째 약점은 너무 무거워서 밀기가 쉽지 않았고, 두번째 약점은 지면과의 접점에 응력이 집중되어 테두리가 자주 깨져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이러한 바퀴가 오늘날과 같은 바퀴살을 가진 바퀴로 진화 하기까지 또다시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當其無 有車之用 당기무 유거지용 여기서 노자의 설명을 들어 봅니다.삼십복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_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서른 개의 바퀴살을 바퀴살통에 모으니 가운데가 비어 있으므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바퀴살은 구조역학적으로 인장력을 받습니다.그래서 철사줄처럼 가느다란 자전거 바퀴살이 자전거에 실린 무게를 감당하는 것입니다.더구나 지면으로부터 전달되는 항력은 바퀴살로 분산되어 바퀴 축에 모이므로 과거 디스크 형태의 바퀴처럼 지면과 접촉하는 부위가 파손될 염려가 없습니다.노자가 구조역학에 관한 지식이 있었는 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노자는 기원전 4C 사람인데 이미 물리학을 꿰 뚫고 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도덕경은 원래 존재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이치를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서양에도 철학은 있지만 동양의 그 것과는 접근 방법이 많이 다릅니다.도덕경은 노자로부터 출발한 것이 맞지만 BC 4C에 시작하여 적어도 2백년 후 漢初에 완성된 책이므로 한 사람이 집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다만, 이 책이 오늘날 새로운 조명을 받는 이유는 철학서라고 하기에는 학문적 깊이가 다소 약한 듯 보이지만 존재의 이치를 시니컬하게 설명한 책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데 이유가 있습니다.존재의 명분 _ Gyongyonglee Architects 비어있음으로 쓰임이 생기는 것 건축은 비워내는 것입니다.건축가는 비워내고 채우는 것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입니다.그런데 요즘 건축가들은 자꾸 채우려 합니다.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해 명분없이 매스를 비틀고 파냅니다.건축은 인성을 키우는 요람 같은 것이므로 본래의 순수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자꾸 더하려는 심리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_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문과 창호를 내어 방을 만듦에 속이 비어 있으므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이 얼마나 철학적인 고찰인가요?노자는 다음 귀절에서 더 멋진 말을 하고 있습니다.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_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존재함으로 이로운 것들은 그것이 비어 있음으로 쓰임이 생기는 것이다.존재의 명분 _ Gyongyonglee Architects 名可名非常名 명가명비상명 노자는 도덕경 제1장에서 道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_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너희가 알고 있는 도를 道라고 할 수 있지만 항상 그 道는 아니다.그렇게 이름 붙일 수 있지만 항상 그 이름은 아니다.도는 「길」 道자를 쓰며 ‘올바른 길’ 또는 ‘마땅한 도리’를 의미합니다.그런데 노자가 설파하고자 하는 道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도의 뜻을 넘어 원래 있던 것들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충이용지 혹불영_道沖而用之 或不盈도는 그릇처럼 비어 있지만 쓰임에 넘치는 일이 없다.오불지수지자 상제지선_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누구의 아들인지 난 알 수 없지만 하나님보다 먼저 있었음이 틀림없다.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학문은 신학도 아니요, 수학도 아니고 바로 철학입니다.철학은 원래 있던 거니까요.건축은 장식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좋은 건축은 철학으로 채워지며 원래 있던 것들을 찾아가는 작업, 이것이 존재의 명분입니다.존재의 명분 _ Gyongyonglee Architects